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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
2000년 04월호
"인간은 죄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졌으며 그래서 참 기쁜과 축복 대신 죄에 대한 가책, 고통, 두려움으로 어둠속에서 헤매야 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죄사함 하나로 회복될 수 있다"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설교집 중에서) 김수헌 월간중앙 기자 ([email protected]) 대전 한밭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시무중인 박옥수 목사는 지난 40년 동안 교파를 초월, 죄사함의 복음으로 수많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창조해왔다. 교계의 초베스트셀러인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의 저자인 박목사는 복음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찾아가 죄사함과 거듭남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한다. 대전 기쁜소식선교회에서 박목사를 인터뷰했다. ― ‘주일을 지켜라’ 혹은 ‘십일조를 내라’ 등 교회들이 외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거듭남과 죄로부터의 해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못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종종 사람들을 만나 보면, 방언을 하거나 병고침을 받거나 환상을 보는 것을 거듭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 처음 신앙을 시작할 때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외우고 주일을 지키고 술·담배를 끊고 십일조를 내는 부분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데, 그렇게 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신앙이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 내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지 않으면 내 속에서 여전히 육신의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에, 육신의 욕망을 꺾고 성경 말씀을 따라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 가운데 육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지어 비난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죄를 사함받고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들어오면 우리 속 중심이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도둑질하는 마음을 가지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간음이나 살인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그렇지 않으니 자연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서도 죄가 싫어지고, 음란하고 추한 것이 싫어지면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디엘 무디나 요한 웨슬레 등 귀한 하나님의 종들이 전부 그러한 변화를 입고 나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거듭날 수 있도록 정확한 말씀으로 인도해 주지 아니하고 선한 일을 하고 말씀대로 의롭게 살라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니 성도가 1천만명이라고 말을 하지만, 안 믿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인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려 해도 그 속마음이 악한데 그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죄를 사함받고 거듭난 사람이 10만명이나 100만명만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 교회가 달라지고 한국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다면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을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거듭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뱀의 말을 듣기 전에는 선악과를 따먹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를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뱀의 말을 듣는 동안 뱀의 마음에 들어 있던 탐욕과 불신이 하와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뱀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남이란 이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주님의 마음이 들어 있는데, 말씀을 받을 때 주님의 마음이 내 속에 들어와 내 마음이 아닌 주의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삶이 시작됩니다. 육체의 소욕, 곧 하와가 범죄했을 때 받은 악한 마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바로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자기가 죄를 끊으려고,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마음이 내 속에 들어와 자연히 거룩한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는데, 이 복음을 듣고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처럼 변화되었습니다. 죄악된 삶에서 벗어나 성령에 의해 이끌리는 밝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 기쁜소식선교회에서 목회자와 선교사를 배출하는 과정은 다른 교단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여러 명의 선교사님들이 모여 거듭난 전도자들을 키우기 위해 대구에 설립한 선교학교에서 훈련받으면서 그들의 삶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너희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라면 하나님이 필요한 걸 주실 것이니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 절대 집에서 돈을 가져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지만 응답이 오지 않아 굶기도 했고, 그래서 ‘이게 진짜 가능한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형제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부럽기도 하면서 ‘나는 왜 안되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또 음식이 생기면, 이게 내 기도로 이루어졌는지, 다른 형제가 한 기도의 응답으로 왔는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제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일을 겪었어요. 1964년 경남 거창읍 장팔리라는 곳에서 조그마한 교회의 전도사로 있었을 때입니다. 어느날 선교사님으로부터 ‘다음 월요일에 대구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주머니에 돈은 한푼도 없었고, 우리는 ‘절대로 사람에게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돈이 필요하다는 암시도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막막했지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은 없었고, 주일예배 때 성도들이 사정을 알아채고 여비를 주었으면 했지만 월요일 아침 버스를 타러 나갈 때까지 아무런 도움을 못받았습니다. 그날 아침에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마침 길목에 있던 우리 교회의 재정을 담당한 형제의 집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정류장은 가까워 오고, ‘다른 사람에게 암시조차 하지 말랬는데 어떡해야 하나?’하고 마음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 형제가 ‘전도사님, 어디 가십니까? 대구 가십니까?’하고 물어 왔으면 하는 기대도 생기고, ‘재정 맡은 사람이 전도사가 대구에 가는데 미리 차비도 안 챙겨 준다’는 불평까지 생기더군요.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니 내가 너무 초라한 겁니다. ‘앞으로 복음 전도자로 살아야 할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고 생각하니 제 자신이 너무 싫어졌어요. 그래서 ‘오늘 못 가는 한이 있어도 구차하게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일부러 그 집을 돌아 지나쳤지요. ‘하나님, 정말 당신만 의지하겠습니다. 당신이 걸어서 가라면 걸어 가고, 못가더라도 사람에게는 의지하지 않으렵니다’하는 생각으로 걸어가는데 앞에서 대구 가는 버스가 옵디다. ‘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버스가 제 앞에 딱 섰어요. 일단 올라탔더니 제가 잘 아는 어떤 부인 자매님이 버스에 앉아 계시더군요. 이 부인은 친정 집을 다녀가는 길이었는데 제 버스비를 대신 내주었습니다. 그 부인이 하는 말이, 친정 살림살이가 궁색해 다녀갈 때마다 대구 가는 여비만 남겨 놓고 돈을 다 친정어머니에게 주고 왔는데, 그날 아침에는 어찌된 일인지 자기도 모르게 자꾸 지갑 안으로 돈을 도로 집어넣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가 많아져 내가 인색해졌나?’하고 생각하던 참에 제가 가방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아, 전도사님 여비 주라고 하나님이 그러셨구나’싶어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 재정 담당 형제 집에 들어갔으면 버스가 지나갔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 인간을 바라보고 살지 않아야겠다고 더욱 더 굳게 마음을 정한 거지요. 그후로는 어려워도 한번도 사람에게 암시 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굶는 것도 어렵지만 굶는 것을 표 안 내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주님께서 늘 우리를 도우시는 것을 느끼고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신다는 마음이 안들면 올바른 사역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 선교학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 한푼 없이 훈련을 받습니다. ‘진짜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구나. 하나님이 도우시는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볼 때까지 선교학교에서 훈련받는 겁니다. 오랜 시간 동안 훈련받아도 안되면 남고, 믿음을 체험한 분들만 전도지로 나가 사역합니다. 또 하나님이 분명히 역사하는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합니다. 시험으로 지식을 테스트하거나 암기력이 좋아 성적을 잘 받은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걸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또 믿음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우리 선교학교의 특징입니다. 우리 선교학교에 오는 분들은 처음부터 그런 각오를 하고 옵니다.” ― 나환자촌 집회와 관련해 목사님께서는 여러 가지 일화를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소개해 주시죠. “제가 대구에 살 때입니다. 영천 서광교회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나환자촌에서 집회를 해 달라고 하셔서 가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그런데 그분 말씀이 ‘원래 어느 목사님이 오시려고 했다가 바빠서 못온다고 통보가 왔는데, 나환자들인 우리를 꺼려 안온다며 다들 실망하고 있으니 목사님은 꼭 오셔야 한다’고 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요. 나환자촌 집회에 가기 전에 우리 교회 목사님 한분이 ‘나환자촌에 가면 나환자들이 달걀을 까서 고름이 흐르는 손으로 주면서 먹는지 안먹는지 본다’고 해요. 저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회 3일쯤 전, 새벽에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신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거룩하신 우리 주님께서도 문둥이 집에 들어가셨는데, 나같은 인간이 무어라고 그것을 꺼리랴?’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나환자가 따로 있나? 나도 병에 걸리면 오늘이라도 나환자가 된다.’ 이런 마음이 드니, 정말 나환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어도 아무렇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고 주님의 마음이었어요. 당일 집회를 마치고 30명쯤이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고 싶다며 제 방에 모였어요. 그 집회를 통해 거듭난 장로님이 키우던 닭을 팔아 돈을 마련해 나환자촌 순회집회 비용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일곱개 나환자촌 교회를 다니면서 집회를 했는데 나환자들과 많이 친해져 같이 잠도 자고 음식도 먹고 목욕도 했지요. 어떤 목사님은 울기까지 했습니다. ‘나환자로 태어나 한번도 사람 대접 못받았는데, 박목사님한테 사람 대접 받았다’고 했어요.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을 지배하니 가능한 일이었지요.” ― 교도소 전도 중 혹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제가 서울에 있을 때 수원교도소 교무과장이라는 분이 제 설교 방송과 ‘기쁜소식’이라는 잡지를 보고 교도소 집회를 해달라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3월1일 휴일인데도 교무과장이 일부러 직원들을 다 출근시켜 재소자와 직원들을 상대로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계속하여 죄사함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재소자 중에는 경제사범으로 복역하던, 제가 잘 알던 분도 있었고, 살인수 등 여러 재소자들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출소한 후 결혼을 시켜줘 가정을 이룬 분도 있고, 목사가 된 분도 있고, 뒤에서 복음을 뒷받침하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제가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가면서 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는 겁니다. 살인범이든 사형수든 그 마음 안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변화됩니다. 대전이나 안동·안양교도소 등을 다녔는데, 특히 수원교도소에서 있었던 역사들은 잊을 수 없습니다.” ― 기쁜소식선교회 소속으로 해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중에는 아주 힘든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분들의 활동하는 모습을 좀 전해 주시죠. “지난해 인도 뉴델리 시내 한가운데서 호주 선교사 가족이 탄 자동차에 힌두교도들이 불을 질러 가족을 다 살해한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곳은 선교사들이 생명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데도 우리 정영민 선교사가 자원해 가족들을 데리고 가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 같은 곳은 말라리아 등 여러 가지 풍토병에 걸릴 위험이 있지요. 그런데도 우리 선교사들은 일본·독일·미국 같은 선진국으로 나가기보다 남미나 아프리카·중국·베트남 등으로 나가는 것을 더 원합니다. 아프리카 케냐 선교 선교사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자면 한이 없지만, 중국같은 곳은 선교가 불법인데도 우리가 나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듭나기도 했지만, 옥고를 치르거나 추방되는 일들도 많이 있어요. 케냐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선교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 나라는 케냐 정부가 인정하는 종교 등록이 없으면 선교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케냐 교회 소속으로 들어가 선교 활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때 만났던 두명의 케냐인 자매와 인연이 되어, 그 자매들이 나가던 케냐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김종덕·윤종수 두 선교사를 그 교회 소속 선교사로 해서 선교 비자를 얻었어요. 그런데 제가 1995년 케냐에 갔더니, 그 교회에서 가장 높은 기통가 목사라는 분이 저를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분들은 이같은 만남을 통해 으레 돈을 요구하지요. 기통가 목사가 저를 보고 ‘예배당을 짓는 데 30만달러가 필요하고, 빈민촌 전도사업을 하는 데 15만달러가 필요하니, 박목사님이 돈을 대 달라’고 하더군요. 우리 선교회의 두 선교사를 선교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그 대가를 내놓으라는 뜻이었는데, 그런 거래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통가 목사에게 ‘목사님, 케냐에는 하나님이 안 계십니까?’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제가 어떻게 하나님께 구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간증했어요. 그리고 인사하고 헤어졌지요. 그 뒤 무가바나라는 케냐인이 저를 찾아와 자기 손자가 제 저서를 한권 갖다 주어 읽었다면서, 자기가 종교 등록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데 우리 선교회를 등록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사인했어요. 그런데 제가 케냐를 떠나던 날 기통가 목사가 경찰에 김종덕·윤종수는 자기 교회 소속이 아니라고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마침 우리 선교사들이 정글로 전도하러 나가고 없으니 현장에 있던 케냐 사람 한 명을 잡아 경찰서로 데리고 갔어요. 그 사람이 바로 무가바나의 손자뻘 되는 사람이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무가바나가 자기 손자를 구하기 위해 곧바로 종교 등록 신청서를 접수했어요. 접수증이 있으면 허가가 나올 때까지 종교 행위를 할 수 있거든요. 그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선교회의 종교 등록을 방해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종교 등록을 얻은 일이 있어요.” ― 해외 집회를 다니면서 인상깊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재작년에 제가 케냐 나이로비에서 집회를 했는데, 그 무렵 미국 대사관에 대한 폭탄 테러가 있었습니다. 그 며칠 뒤 우리 집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집회 예정 장소인 대학교가 폭탄 테러 현장과 불과 100m밖에 안 떨어진 곳이라 그 일대는 통행이 금지돼 걱정했는데 집회 하루 전날 통행금지가 해제되더군요. 지난해 봄에는 남미 페루의 리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파라과이의 아순시온 등 세곳에서 집회를 했는데, 제 심장이 상당히 안 좋을 때였습니다. 세곳의 예정된 집회를 무사히 일정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요. 주로 운동장을 빌려 집회를 열었는데, 설교를 마치면 쓰러져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파라과이는 당시 부통령이 낮에 괴한들의 총에 맞아 죽고 대통령 음모설이 나돌면서 공항이 폐쇄되는 등 큰 혼란 속에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우리가 파라과이에 들어가기 며칠 전에 공항이 개방되었지요. 여름부터 제 병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았습니다. 가을에는 거의 격주로 부천실내체육관이나 서울 교육문화센터, 전주빙상경기장 등에서 집회를 가졌는데, 하나님이 지금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예배에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도 열심히 다니는 분들이 밖에서 행동하거나 말하는 것을 보면 과연 참신앙을 하는 분일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집회를 하는데 어떤 목사님 내외분이 저한테 상담을 요청했어요. 제가 사모님에게 ‘신앙생활에 만족하느냐’고 물어 봤더니, ‘지쳐서 이제 한계에 왔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신앙생활 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신앙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너를 보내 이집트에서 내 백성을 이끌어내리라’ 하셨어요. 모세를 보내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하려고 하지요. 집회가 끝난 뒤 제가 목사님 내외를 모시고 며칠 동안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목사님이 ‘이제까지 내가 정말 거꾸로 믿었다’고 하시더군요. 학문은 배워나가다 보면 점점 더 깊어지지만, 신앙의 세계는 방향이 틀리면 점점 더 어그러집니다. 완전히 뒤집어져 정반대로 되어 버려요. 신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선을 행하고, 계명을 지키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에 담고 시작하지요. 어느 정도 열심히 하다 보면, ‘내 힘으로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참 신앙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됩니다. 그때부터는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믿던 마음이 완전히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옮겨지는 경지에 도달하면, 예수님이 그때부터 그 사람 마음 속에서 일을 하십니다. 술·담배를 끊는 것도 내가 안하고 예수님이 하시면 너무 쉽지요. 설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기가 애써 하려고 하니 열심히 하면서도 인간의 한계에 부닥칩니다. 어떻게 인간이 실수를 안합니까?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저도 어려서는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아버지께 매도 많이 맞았지요.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또 다시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날 스스로를 바라보니 저 자신이 너무 추한 인간이었고, 제가 미워졌습니다. 저를 부인하게 되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제 마음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후로는 그 전에는 자주 안보던 성경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성경에 있는 말씀이 바로 제 마음임을 깨닫고는 너무 기뻤죠.” ― 목사님께서 목회활동을 해 오시면서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라고 할까요. 회고를 하신다면요. “춥고 배고픈 것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참 어려웠지요. 어떨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힘있게 일을 하다가도,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내가 목사냐,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하는 마음이 들어 좌절하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네번 정도 했지요. 한번은 선교학교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러 갔는데, 창세기 강해를 하는 시간이었어요. 당시에 저는 나약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던 때라,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에게 ‘나는 이제 내 갈 길을 가겠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강의중에 학생들에게 ‘창세기를 읽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그들이 너무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왜 그만두려 했나? 이렇게 귀한 복음의 일에 어려움이 없을 수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회의에 빠지거나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이 새롭게 은혜를 베푸셔서 모두 넘길 수 있었지요. 처음에 김천에서 전도사로 사역할 때입니다. 전세로 들어간 집이 은행에 넘어가는 바람에 졸지에 길거리로 나앉을 처지가 됐어요. 은행 지점장이 와서 집을 비워 달라고 몇차례 이야기하기에 제가 ‘지점장님, 저의 주인인 예수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아직 응답이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지점장이 ‘나는 신앙을 안 가졌지만, 박형 이야기를 들으니 공감이 갑니다’ 하더군요. 어쨌든 사정은 변함이 없고 기도만 드리던 어느 날 방을 구경하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돌아다니다 보니, 어떤 좋은 건물의 2층이 하나 나와 있었어요. 1970년도의 돈으로 전세금이 20만원이었는데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돈이었지요. 포기하고 한달쯤 지난 뒤 기도하다 다시 그 집에 가 보았더니 가격도 싼 편이고 집도 좋았는데 그때까지 세가 안 나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하나님이 이 집을 주시겠다’는 믿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마음은 하나님이 일하실 때 일어나는 거지요. 혈루증 걸린 여자에게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왔을 때, 병이 나았잖아요. 저녁에 집주인을 만나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이 도시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는데, 이 도시의 시민 하나가 나에게 손해를 끼쳐 집은 은행으로 넘어갔고, 그는 도망갔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니, 하나님이 이 집을 주시려고 하는데 나는 돈이 한푼도 없다. 동정은 하지 말고 줄 수 있으면 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한참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나는 지자교회 장로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국도변의 이런 건물을 주셨고 하나님의 종이 쓰시겠다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쓰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에 다리 밑으로 가야 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항상 하나님이 도우셨던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어려움으로만 남아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고 늘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했지요. 이런 이야기는 밤새도록 해도 다 못할 겁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갔을 때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지난 여러해 동안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는데, 사실은 제가 하나님을 섬긴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를 섬기셨습니다. 저도 이제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제가 이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좀 주십시오.’ 기도하고 나니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 마지막으로 저희 “월간중앙” 독자들을 위해 한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저는 책을 쓸 만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인터뷰할 만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하면 죄사함을 받아 확실한 구원의 선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 전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저에게 허락하셨다고 믿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상태가 거듭난 상태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어떤 때는 거듭난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아닌 것 같은 거지요. 독자들 중에 신앙에 대해 알고 싶다거나, 교회를 다니는 분들 가운데 거듭나기를 원하시는 분들, 혹은 자신이 거듭났는지 아닌지 알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분들 모두 ‘내 힘으로 사는 삶과 죄사함을 받아 예수님이 내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면 합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다스리는 삶이 된다면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떻든 복을 받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주님이 모두 조처해주십니다.” ◎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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